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프란시스코 피사로 (문단 편집) == 최후 == 피사로는 그동안 꿈꿔왔던 모든 것을 이루었다. [[후작]]이라는 높은 지위, 막대한 재산, 그리고 페루의 지배자라는 신분. 나름대로 소박한 생활을 하며 리마 건설에 몰두했다. 그리고 이제 더이상 태클은 없을 줄 알았지만, '''[[사망 플래그|살아남은 알마그로 일파가 복수를 노리고 있었다.]]''' 알마그로 일파는 [[칠레]] 개척도 무산되었을 뿐 아니라 지도자까지 잃었으며 잉카 원정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재산도 챙기지 못했던 상황이었다. 이게 다 피사로 때문이라며 대놓고 그에게 불만을 드러냈다. 피사로 역시, 나름대로 챙겨줬는데도 제몫을 못하면서 문제만 일으켜댔던 알마그로 일파를 곱게 보지 않았다. 결국 알마그로 일파는 피사로 일파에게 철저히 따돌림을 당해 [[왕따]] 신세가 되었고, 피사로가 살아있는 이상 꿈도 희망도 없어 보였기에 피사로를 죽여야한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. 라스 살리나스 전투가 끝난 지 3년이 지난 1541년 6월 26일 일요일, 피사로는 알마그로 일파가 영 수상쩍다는 정보를 몇 차례 전해들었긴 했으나, 그래도 설마설마했던 것으로 보인다. 어쨌든 조심해서 나쁠 건 없으므로 일요일 미사에 불참하고 집에 머물며 손님들과 점심 만찬을 벌였는데 식사 중이라 방심한 상태를 노리고, 알마그로 일파의 암살자들 20명이 습격했다. 이 20명 중에는 알마그로의 아들[* 파나마 원주민녀와의 사이에서 낳은 [[혼혈]] 아들로 당시 22세였다.]도 포함되어 있었다. 피사로와 그의 손님 중 일부는 필사적으로 저항했지만 쪽수도 딸리는데다 무장도 제대로 못 갖춘 상태였기 때문에 결국 모두 살해당했다. 피사로는 격투 끝에 숱한 부상을 입고 쓰러졌다. 그리고 마지막 순간 피로 [[십자가]]를 그린 뒤 힘겹게 >'''"[[유언/실존인물/서양|고백]]..."''' 이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.[* 목숨이 끊기기 전 하느님께 죄를 사해달라는 의미였다는 견해도 있고, 암살자들에게 간단한 [[고해성사]]를 볼 시간을 달라는 의미였다는 견해도 있다.] 이후 암살자 중 한 사람이 꽃병으로 머리를 갈겨 피사로의 목숨을 끊어버렸다. 향년 65세(혹은 70세)였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